
다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이 왔다, 더 깊은 연대로 가자
2026년 8월 26일
고용허가제 22년과 한국 사회의 이주노동자
2004년 8월 17일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이후 22년이 흘렀다. 고용허가제가 담긴 「외국인근로자고용 등에 관한 법률」은 1조에서 “이 법은 외국인근로자를 체계적으로 도입 관리함으로 써 원활한 인력수급 및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1994년 만들어졌던 산업연수생제도에 맞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투쟁으로 도입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산업적 요구에만 초점을 맞춘 단기 순환식 임시 취업· 체류 제도에 불과하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주 금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근로 계약 기간은 엄격히 제한되며, 단기 체류가 아닌 경우에도 가족을 초청하거나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업장 변경 제한은 고용허가제도 아래에서 노동자의 자유로운 고용계약 권리를 박탈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고용주의 명백하고 중대한 위반(‘중대한’의 기준 자체도 주관적)이 있지 않는 한, 고용주의 동의 없는 사업장 변경은 불가능하다. 또한, 사업장을 바꿀 수 있는 횟수마저도 제한되어 있으며, 구직 기간 역시 3개월을 넘길 수 없다. 고용주가 고용 연장(기간 추가, 재입국 고용)을 해 주어야만 체류 연장이 가능하므로 “계약”의 결정권은 철저히 고용주에게 있다. 그 결과 임금 미지급과 체불, 위험한 작업 환경, 폭력과 괴롭힘 등의 부당한 상황에서도 노동자가 사업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고, 고용주에게 완전히 종속된 강제 노동의 성격이 강해진다. 산재 위험과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도 온전한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워 건강권까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
취업 중에 겪게 되는 문제는 입국 이전 상황과도 깊이 연결된다. 입국 쿼터(외국인력 도입 규모)보다 한국에 들어오려는 대기자 수가 훨씬 더 많으므로, 노동자들은 긴 시간 동안 사업 주가 자신을 선택해 주기를 기다려야 한다. 노동자들 중 일부는 빚을 내어 브로커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한국행을 원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한시라도 빨리 입국하여 일하기를 원하므로, 자신에게 제시된 근로계약서를 자발적으로 선택하거나 거부하기란 매우 어렵다. 사업주가 제시하는 근로계약서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지 못한 채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 사업주들은 근로계약서에 노동조건을 상세하게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입국한 후에야 자신의 임금 및 노동 조건이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를 알아차려도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와 같은 문제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면서, 노동자들은 추방당하지 않고 계속 일하기 위해 열악한 조건을 그대로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진다. 이런 제도상의 문제로 의도치 않게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가 미등록 상태로 전환된다.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등록체류자 수는 397,522에 이른다.
고용허가제가 적용되는 비전문취업 E-9 비자 노동자뿐 아니라, 기능인력(E-7-3, E-7-4), 계절노동(E-8), 선원취업(E-10), 회화강사(E-2) 노동자들도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다양한 노동권 침해를 겪고 있다. 그 중심에는 부당한 노동 환경과 계약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드는 사업장변경 제한이 자리잡고 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 산업재해, 열악한 숙소, 강제 단속과 추방, 일상화된 차별과 착취, 괴롭힘과 폭력 등에 시달 려 왔다. 그 단적인 예로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률과 산재 사망률은 내국인의 세 배에 이른다.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과 위험이 가중되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로 스스로를 조직하여 싸워왔다. 시민사회와 함께 강제적 노동 철폐,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투쟁의 핵심적인 요구로 내걸었다. 이들은 헌신적으로 일하며 자신의 권리를 찾기위해 싸워왔지만, 이주노동자를 이윤 획득을 위한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자본과 정부의 벽은 높았고, 기본적인 제도 개선조차도 쉽지 않았다.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외면한 채, 저임금 노동력을 수급하는 데에만 골몰했다. 그 과정에서 제도적 문제로 양산된 미등록 노동자에 대해서는 자의적인 단속과 추방만을 반복했다.반전의 시작
반전의 시작
반전의 바람은 이주노동자를 값싼 인력 수급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조선소에서 불어오기 시작했다. 한동훈이 장관이었던 2022년, 법무부는 심각한 인력난을 겪는 조선업을 지원하겠다며 외국인 인력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인원을 확대했다. E-7-3 비자(일반기능인력)의 대상에 조선소 용접공·도장공·전기공을 편입시키고, 각종 검증 기준을 완화하였으며, 쿼터를 확대했다. 실제로 E-7-3 발급 건수는 2021년 264건에서 2025년 13,297건으로 약 50배 늘었고(그중 조선 용접공만 219건에서 9,816건으로 증가), E-9(고용허가제 대상인 비전문취업)에서 전환하는 E-7-4(숙련기능인력)도 2021년 3,640명에서 2025년 44,195명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기능인력’이라는 명칭과 어긋나게, 이들에게는 차별적인 저임금과 고위험·고강도 노동이 주어졌다. 게다가 위험한 조선소 현장에서 제대로 된 안전 교육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HD 현대 중공업에서는 인센티브 차등지급에 더해 이주노동자들에게만 식대를 부담시키는 차별적 조치가 이루어졌다. 노 동자들의 불만이 누적되던 와중에 사측은 기본급을 줄이고 성과차등임금제를 도입하는(제조업 사업장에서 성과 평가는 관리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매우 크기 때문에 시행되지 않거나 시행되더라도 형식적인 경우가 일반적이며, 특히 이주노동자들에게 차등적 성과 평가는 재계약 여부에 따른 체류권 문제와 직결됨) 임금체계 개악안까지 추진했다. HD 현대 중공업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임금체계 개악안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회사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임 시간에 맞추어 회식자리를 마련하는 등의 회유책을 쓰기도 했지만, 노동자들은 소셜미디어로 회식을 거부하자는 의견을 나누며 반대 모임에 참석했다. 결국 지난 7월 5일 “나쁜 계약” 철회를 위한 전국이주노동자 공동행동대회가 울산에서 열렸고, 불안정한 처지에서도 용기를 낸 이주노동자들이 집회에서 노동조합 가입서에 서명을 했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사업장 변경 제한을 정점으로 한 구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체계적으로 가로막혀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D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일터의 요구를 내걸고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바꾸기 위해 직접 투쟁에 나섰다는 점은 매우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오랜 시간 동안 힘겹게 싸워왔던 이주노동자들이 투쟁 경험이 적은 노동자들과의 연대와 소통을 통해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점과 정규직 노동조합도 함께 하고 있다는 부분도 중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회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투쟁에 나섰던 노동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당장의 요구안을 관철시키는 것을 넘어, 안정적으로 재계약을 맺고 활동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광범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더 넓고 깊은 연대의 흐름으로
HD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에 이어 또 다른 싸움도 시작되었다. 8월 11일에는 새벽 5시부터 전북 김제의 자동차 부품업체 (주) 일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사무동 로비에서 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강 회사 측은 이주노동자들의 비자변경·비자연장·노동계약 연장을 거부하여 결과적으로 집단·표적 해고를 자행해왔다. 회사는 2025년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맺고, 이주노동자 비자변경·비자연장·재계약을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 13명에 이르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원에 대해 비자연장과 재계약을 거부했고, 평가 기준과 근거를 밝히라는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미 13명이 해고된 상황에서, 앞으로 1년 이내에 나머지 65명에게도 1년 이내에 순차적으로 비자 만료 혹은 재계약 시점이 도래하게 된다. 회사가 지금과 같은 행태를 계속 이어간다면 모든 이주노동자 조합원들이 해고될 수 있다. 또한, 노동자들에 대한 작업반장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2·3차 평가자가 합리적 근거 없이 평가 점수를 낮추거나, 이주노동자들에게 금속노조를 탈퇴해야 재계약이 가능하다고 회유하는 발언이 담긴 녹취도 나왔다. 체류 문제와 직결된 비자와 재계약을 빌미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참여할 권리를 박탈한 것이다.
8월 16일에는 서울에서 ‘금속노조 이주노동자 투쟁 승리! 2차 전국공동행동대회’가 열렸다. 여러 HD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들에 이어 일강 노동자들도 함께 자리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은 일강 이주노동자는 재계약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름을 밝힐지 여부를 두고 밤새 고민한 끝에 결국 밝히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날 울산·대구·전북 등 전국에서 모여든 5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과 연대 시민들의 목소리가 서울 거리를 달구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렵게 뭉친 상황에서 외롭게 싸우다가 지친다면, 다른 누군가 싸우기 위해 나서는 것 역시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강제적인 노동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만들어진 흐름을 더 넓고 깊은 연대를 통해 키워가야 한다.
오는 9월 13일 14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강제노동 철폐! 사업장 변경의 자유 완전 보장! 모든 이주노동자의 인권·노동권 보장! 2026 민주노총 전국 이주노동자 대회”가 “이주노동자에게 자유와 권리를!” 이라는 이름으로 열린다.
요구는 다음과 같다.
- ILO 강제노동금지협약 준수, 모든 이주노동자 사업장변경 자유 보 장
- 임금체불 근절, 퇴직금 국내에서 지급
- 임시가건물 기숙사 전면 금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숙사 보장
- 위험의 이주화 중단, 이주노동자 노동안전 보장
- 근로기준법 63조 폐지, 농어업 노동자 차별철폐
- 계절노동, 어선원, 기능인력 등 브로커 착취 근절과 송출 공공성 실현
- 미등록 이주민 강제 단속추방 중단과 체류권 부여 정책 실시
- 여성이주노동자 성차별 성폭력 근절, 여성노동자 권리보장
- 인종차별 철폐, 차별금지법 제정
대부분 앞서 살펴보았던 바와 같이 이주노동자들이 겪어 온 부당한 현실속에서 스스로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내용들이다. 다루어지지 않은 내용인 근로기준법 63조는 농림·축산·수산업 종사자, 감시·단속적 근로자, 관리·감독 업무 종사자에게 근로시간(주 40시간), 휴게시간, 주휴일 및 휴일·연장근로 가산수당 규정의 적용을 제외하는 조항이다. 농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휴식 부족에 시달리며, 각종 수당 미지급 등으로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한다. 또한 모든 이주노동자들은 다양한 차별과 폭력을 당하고 있지만, 특히 성차별, 성폭력 등 여성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이중의 차별은 더욱 심각하다. 마지막으로 중첩되어 나타나는 차별의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한 출발점으로서의 차별금지법도 요구에 포함되어 있다.
이주노동자 활동을 활발하게 벌여나가는 단체 중 “사람이 왔다”라는 곳이 있다. 이주노동자는 일하러 온 기계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이주노동자 투쟁은 이주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우리 곁의 이웃과 함께 내가 더 살기 좋은, 내가 바라는 세상을 위한 싸움이다. 9월 13일 서울 거리에서 함께 하자.

글 : 온
